대학 심사에 인공지능(AI) 도입될까… 일부 대학 초기단계 활용 시작
대학이 선호하는 인재상을 선발하기 위해 대학의 입학사정제는 갈수록 섬세해지고 있다. 표준화된 점수보다는 세부적인 지원자의 성격 취미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종합적 입학사정제'(Holistic Review)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7일 정치전문 매체 ‘더 힐'(The Hill)은 머지 않은 미래에 대학들이 지원자 평가를 위해 인공지능을 도입할 것이라는 흥미로운 기사를 소개했다. 지원자의 다양한 배경을 세분화하는 작업에 있어서 사람보다 더 효율적으로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 시기상조일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입학사정제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미래를 정리했다.
인간의 편향적 시각 보완
신입생 선발에 있어서 입학사정관의 역할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12년 교육과정의 결실을 맺기 위해 달려온 학생들의 희비가 바로 입학사정관의 결정을 통해 엇갈리기 때문이다. 입학 경쟁이 치열한 명문대일수록 입학사정관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된다.
특히 다수의 대학이 SAT ACT 등 표준화 시험점수를 탈피하고 지원자의 환경 인성 활동배경 등을 더 면밀히 살피는 종합적 입학사정제 채택에 나서며 입학사정관의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더 힐은 입학사정관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인적 오류(human error) 발생의 가능성이 더욱 커지게 된다고 말한다. 태생적으로 편향적 시각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 매년 수 천 개가 넘는 지원서를 검토하게 되면 대학이 추구하는 방향의 지원자 대신 다른 지원자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더 힐의 주장이다.
표준화 점수로 신입생을 선발하던 시절보다 더 다양한 지원자의 배경을 검토해야 하는 만큼 입학사정관들의 업무 또한 과거보다 가중됐다. 한 대학의 입학사정관은 “점수로 지원자를 결정하는 과거에 비해 한 개의 가치라도 더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노동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추세는 표준화 점수로 신입생을 선발하던 시절보다 더 입학사정관의 주관이 섞이게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입학사정관 또한 인간에 불과하며 더 많은 강도의 노동으로 지원자를 검토하다 보면 객관성을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이유로 주관이 개입되는 인간의 실수를 보완하고 입학사정제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직은 상용화 초기단계
그렇다면 인공지능 입학사정제 도입은 어느 단계까지 현실화됐을까. 더 힐에 따르면 아직까지 인공지능을 활용한 입학사정제는 사용화 초기단계이다. 대학들의 종합적 입학사정제를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캐나다 소재 IT업체 ‘키라 탤런트’는 인공지능을 도입한 입학사정제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키라 탤런트의 앤드루 마텔리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키라 탤런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기술력을 통해 대학 입시에 인간성(humanity)이란 가치를 다시 불러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키라 탤런트는 캘스테이트 풀러턴 등 대학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인간의 편향적 시각을 보완하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인공지능이 입학사정관의 개입 없이도 자발적으로 대학이 추구하는 인재를 선발하는 수준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 키라 탤런트가 보유한 기술력은 지원자가 아닌 입학사정관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다.
키라 탤런트가 제공하는 기술력은 대학이 지원자를 인터뷰할 때 특정 입학사정관이 특정 지원자에게 편향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또는 편향적 시각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지 않는지 등의 사실을 인공지능을 통해 탐색하도록 한다.
지난 해 캘스테이트 풀러턴은 이러한 기술력을 대학 지원자 인터뷰하기 위한 입학사정관들의 인터뷰 질문 영상 녹화 때 사용했다. 캘스테이트 풀러턴의 디에나 정 간호학과 교수는 “지원자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캘스테이트 풀러턴 입학사정관들의 배경을 이해함과 동시에 편향적 시각이 최대한으로 배제된 인터뷰 질문들을 통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이 가진 배경과 견해를 이야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 입학사정제의 미래
현재 단계에서 인공지능은 수 천 개의 지원서를 검토해야 하는 입학사정관의 보조로서 그들의 객관성 유지를 돕는 정도의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수의 전문가는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력으로 입학사정제에서 인공지능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더 커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마텔리 CTO는 “현재 키라 탤런트가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인간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또 다른 인간을 더 나은 평가자로 만드는 일'”이라며 “앞으로도 입학사정관이 무의식 중에 범하는 편견을 최소화하면서 점점 더 제도 안에서 인공지능의 역할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입학사정 시스템에서 인공지능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다고 해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존재한다. 가장 먼저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여 인공지능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에 들어갈 데이터를 선택하는 것 또한 편견을 가진 인간의 영역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100%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컴퓨터의 학습이 자동화될 경우 외부에서 발생하는 편견의 요소들이 알고리즘을 통해 머신러닝에 반영되어 컴퓨터가 편견을 새롭게 ‘습득’하게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지난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인공지능 채팅봇 ‘테이’를 선보였으나 일부 극우 성향 사용자들이 반복적으로 인종-성차별 발언과 자극적인 정치적 발언을 사용하자 테이가 이를 학습하여 24시간만에 인종차별 발언을 사용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마텔리 CTO는 “인공지능으로 발생하게 될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역으로 공감과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 이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다”라며 “대학의 입학사정제 또한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방향이 아닌 입학사정관의 객관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올바르게 사용될 때 그 가치가 극대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