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플로리다주 교과서 검열?…'비판적 인종 이론' 문제 삼아 수학 교과서 무더기 불채택
미국 플로리다주 정부가 초·중·고등학교용 수학 교과서 채택 심사에서 41%를 탈락시켰다. 비판적 인종 이론 등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특히 초등학생용 수학 교과서의 경우 10종 가운데 7종에 대해 채택을 거부했다. 우경화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공화당 소속 론 드샌티스 주지사는 일부 출판사들이 초등학생들에게 편협한 인종 이론을 주입시키려 했다고 밝혔지만, 반대 진영에서는 그가 교육을 흑백분리가 공공연하게 이뤄졌던 1960년대 이전으로 퇴행시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17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교육부가 초등학생(1~5학년), 중학생(6~8학년), 고등학생(9~12학년)을 위한 수학 교과서 심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전체 132종 가운데 41%에 달하는 54종을 채택 목록에서 탈락시켰다고 보도했다. 특히 초등학생용 수학 교고서의 경우 71%를 탈락시켰다. 플로리다주는 영어, 수학, 과학 등 주요 과목 교과서에 대해 5년 주기로 심사를 진행해 채택 목록을 발표한다.
플로리다주 교육부는 교과서들을 대거 탈락시킨 주요 사유로 주 방침에 따라 금지된 비판적 인종 이론, 커먼코어(전국 공통 교과과정) 등의 요소들이 포함됐거나 사회정서교육 등 불필요한 요소들이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판적 인종 이론은 인종주의와 인종차별이 단순히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법·제도에 뿌리박힌 체계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비판적 인종 이론은 1970년대 법학 분야 이론으로 주창됐으나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교육 현장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 이론은 정식 과목으로 교육되는 대신 인종주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으로 다뤄진다. 이를 두고 보수 백인 주류를 중심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국민을 압제자와 피해자로 구분해 가르침으로써 차별과 배제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회정서교육은 학생들에게 사회·정서적 문제들을 가르침으로써 학업 성취를 높일 수 있다는 이론이다. 비판자들은 이 교육이 비판적 인종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플로리다주 의회와 정부를 장악한 공화당과 드샌티스 주지사는 비판적 인종 이론을 초·중·고 교육현장에서 퇴출시킬 것을 다짐했고, 실제로 교과서 채택을 위한 심사에서 이를 관철했다. 드샌티스 주지사는 젠더, 역사 등과 관련해 학교 현장에서 교육자들이 언급하거나 가르쳐선 안되는 내용들을 규정함으로써 적극적인 규제를 펼치고 있다. 그는 지난달에는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동성애 관련 교육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의 시행을 확정했다. 이 법안의 지지자들은 너무 어린 학생들에게 동성애 관련 내용을 가르치는 것은 불필요한데다 해악을 끼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반대 진영은 이 법을 ‘게이 언급 금지법’이라고 부르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억압을 조장하고 성소수자 학생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한다.
드샌티스 주지사가 교육 우경화의 선봉장에 선 것은 미국 학교 교육 현장에서 인종·젠더·역사 등과 관련한 변화가 너무 급진적이라고 생각하는 보수 유권자들의 불만을 의식해서다. 지난해 말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은 글렘 영킨 공화당 후보가 당선된 주요 동력 가운데 하나도 비판적 인종 이론 등 교육 문제였다.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