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스탠퍼드, 셋 중 한명이 컴퓨터 전공… 한국 대학도 무전공 선발 확대 가능할까
1학년 때 다양한 과목 듣고
2학년 올라가며 전공 선택
학과 장벽 허물고 인재 양성
정부가 대학에 신입생을 ‘무전공(전공자율선택제)’으로 선발해야 한다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무전공은 학생이 전공을 정하지 않고 대학에 입학해 진로를 탐색한 다음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제도다. 산업 현장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전공 간 장벽을 허물고 융복합 인재를 키워야 대학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 추진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보편화되어 있다.
대학은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는 학과가 도태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학생들이 취업이 잘 되는 인기 학과로 몰리며 이른바 ‘문사철’(문학·역사·철학) 등 기초 학문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무전공을 확대하는 대학에 인센티브(성과급)를 더 많이 주겠다는 입장이다.
◇美 대학 학생에게 전공 선택 자유 보장…”MIT는 50%가 컴퓨터 선택”
4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4년 대학혁신 지원사업 및 국립대학 육성사업 기본계획’에서 대학 입시 무전공 제도 도입과 관련한 계획을 공개했다. 교육부는 2025년도 대입에서 5~25% 이상의 학생을 무전공으로 선발해야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일단은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한 대학에도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다.
교육부는 2025학년도 대입에서 무전공 25% 선발 목표를 유지하고, 점차 비율을 늘릴 계획이다. 무전공 선발은 학생이 전공을 정하지 않고 보건·의료·사범계열을 제외한 모든 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유형1′과 계열·학부 단위로 입학한 뒤 단위 내에서 전공을 고르는 ‘유형2′로 나뉜다. 전공 선택의 제약이 적은 유형1의 선발 비율이 높을수록 가산점을 더 받고, 더 많은 인센티브를 받는다.
기존에도 자유전공학부로 신입생을 선발하거나 학부·계열 단위로 모집했지만, 전공을 선택하는 방법에서 무전공은 크게 다르다. 학과 정원이 정해져 있어 인기 전공은 1학년 때 높은 학점을 받아야 진학할 수 있지만, 무전공은 이런 제한이 없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무전공으로) 들어온 학생들은 원하는 전공으로 갈 수 있다. 그래서 이름이 전공자율선택제”라고 했다.
◇”스탠퍼드대는 700명이 컴퓨터 사이언스 전공하는데 서울대는 50명”
그러면서 미국 명문대 사례를 들었다. 이 장관은 “스탠퍼드대는 (신입생이) 무전공으로 들어와 2000명 학생 중 700명이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한다”며 “그런데 우리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전공이 50여명이다. 오랫동안 남아 있는 학과 벽을 허물고 학생들이 원하는 전공을 하게 해줘야 한다”고 했다. 대학 전공과 직업이 50% 가까이 일치하지 않는 원인이 된다는 지적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미국 스탠퍼드대에는 7개 단과대 75개 학과가 있지만 신입생 1730명이 모두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한다. 학생들은 수업을 들으며 적성을 찾아 3학년에 올라가기 전까지 전공을 선택한다. 복수전공도 가능하며 학부 코디네이터가 학생들의 진로 탐색을 돕는다.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입학하는 학생들도 MIT 특정 전공이나 단과대학에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MIT 그 자체에 지원해 입학한다. 전원 무전공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1학년 1학기에 교양과목을 들으며 전공을 탐색하고, 2학기에 전공을 결정한다. 2학년부터 속한 학과로부터 지도교수를 배정받는다. 또 MIT는 학생들이 전공 장벽 없이 자유롭게 공부하도록 융합 학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컴퓨터공학, 경제학, 데이터과학 세 과목을 전공한 다음 하나의 학사 학위를 받는 식이다.
아이비리그에 속한 코넬대는 3500명의 신입생을 8개 단과대별로 모집한다. 보통 3학년에 올라갈 때 전공을 정하는데, 일부 전공은 선수과목 수강을 요구한다. 전공별 균등 배정 노력을 한다. 대학은 단과대마다 상담 인력을 배치해 학생들의 전공 선택을 지원한다. 복수전공은 단과대 내에서 고를 수 있고, 부전공은 다른 단과대에서 선택할 수 있다.
주립대학인 미시간대는 신입생 7000명을 14개 단과대별로 모집한다. 2학년에 올라갈 때 전공을 선택하고, 전공마다 진입 요건을 충족해야 진학할 수 있다. 다른 학과 복수전공이 가능하다.
완전한 무전공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면 인기 학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부총리는 라디오 방송에서 “MIT는 50%가 넘는 학생들이 (전공으로) 컴퓨터 사이언스를 택한다. 강의가 터져나가 다른 강의실에서 비디오로 강의를 듣는 경우까지 발생한다고 한다”고 했다.
◇무전공 확대 검토하는 대학가…‘30% 선발’도 논의
대학들도 무전공에 대비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서울대는 현재 입학 정원이 123명인 기존 자유전공학부를 학부대학으로 옮겨 정원을 400명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연세대는 최근 무전공 선발을 검토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다. 고려대도 무전공 확대를 논의하고 있다. 한양대는 전공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양인터칼리지(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할 계획이다. 한양대 관계자는 “한양인터칼리지로 정원 내 250명을 뽑고 정원 외까지 최대 330명을 선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민대는 교육부 목표(25%)보다 높은 무전공 선발 비율 30%를 논의하고 있다.
과학·기술 특성화대는 일반대학보다 학제와 전공별 정원 조정이 자유로운 만큼 일찌감치 신입생들이 무전공으로 입학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1986년부터 모든 신입생이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한 뒤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도록 했다. 2020년에는 융합인재학부를 만들어 학생들이 교과 과정을 자유롭게 짜고 모든 학과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광주과학기술원(GIST)도 무전공·무학과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방대는 사정이 복잡하다. 무전공이 확대되면 학생들이 지방대 원하는 학과에 입학하는 대신, 수도권 대학에 무전공으로 입학한 다음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무전공을 확대하자니 신입생이 줄어들 수 있고 무전공을 외면하자니 정부 지원금을 놓치게 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와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협의회는 지난달 24일 무전공 도입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당시 양재용 강원대 삼척캠퍼스 인문사회디자인 스포츠대학장은 “미국 대학, 다른 대학은 몰라도 우리나라 지방대 현실에서는 (무전공이) 절대 안 된다”며 “대부분 인기 학과로 가거나 그만두는 학생이 많다”고 했다.
출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