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는 유전자는 따로 있을까?…신간 '유전자 로또'

삶은 불공평하다. 아무리 기회의 균등을 주장해도 기회를 얻는 건 계층에 따라 다르다. 영어유치원-사립초-국제중으로 가는 트랙과 공립유치원-공립초-일반중학교로 진학하는 건 개인의 실력 여부를 떠나 기회의 균등이라는 측면에서 평등하지 않다. 요컨대 출발선이 다르다. 출발점이 다른 데 동일한 잣대로 비교하는 건 맞지도 올바르지도 않다.

무한경쟁 사회에 내던져진 현대인들은 뒤처지지 않고자 조금 더 앞서서 출발하려 한다. 그 시작은 결혼이다. 대학 졸업자는 대학을 나온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부부는 한두 명의 아이에게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반면 교육을 덜 받은 여성일수록 홀로 아이를 키우는 비율이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이 더 높다.

2016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고교만 졸업하고 출산한 여성의 59%가 결혼하지 않았다. 반면 대학을 졸업한 후 출산한 여성은 10%만 결혼하지 않았다. 즉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여성은 돈은 더 적게 벌고, 먹여야 할 입은 더 많고 가정에 자신을 도와줄 다른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더 낮다는 얘기다.

불평등은 대물림하기 쉽다. 2018년 미국 소득분포 상위 25%에 속하는 가정의 청년들은 하위 25% 속하는 이들에 견줘 대학을 졸업할 확률이 4배 이상 높았다. 이는 그만큼 자녀 교육에 투자할 여력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중요한 대물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유전자다. 연구에 따르면 교육 다유전자 지수(어떤 유전형질에 관여하는 다수의 유전자)가 상위 25%에 속한 집단은 하위 25%에 비해 대학 졸업확률이 4배 높았다.

캐스린 페이지 하든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 교수는 신간 '유전자 로또'(원제: The Genetic Lottery)에서 교육과 사회 불평등을 해석할 때 유전자의 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전자와 교육 결과의 관계가 사회 불평등을 이해하는데, 실증적·도덕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경제학자 대니얼 바스 등이 쓴 논문 '유전적 자질과 부의 불평등'에 따르면 은퇴한 70대 백인 가운데 교육 다유전자 지수가 상위 25%에 속하는 사람의 자산은 하위 25%에 속한 이들보다 평균 47만5천달러가 많았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다유전자 지수가 높은 학생들의 대학 졸업률이 55%에 달한 반면 다유전자 지수가 낮은 학생들의 졸업률은 11%에 불과했다. 유전자에 따라 대학 졸업률이 5배나 차이 나는 것이다. 결국 유전자에 따라 부와 교육 격차가 발생하고, 이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만 저자는 유전학에 대한 강조가 우생학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유전적 차이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진정한 평등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단지 특정 DNA 조합을 물려받았다는 이유로 마땅히 경제적 불이익을 받으면 안 된다"며 "사회에서 가장 혜택받지 못하는 구성원들이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사회를 조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여기서 '정의론'으로 유명한 미국 철학자 존 롤스의 주장을 끌어온다. 롤스에 따르면 선천적 능력 차이는 불평등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자연에서 나타나는 무작위"에 따라 구조화되는 사회의 불공정을 꾸짖으며 '자연 로또'에서 비롯된 불평등은 오직 사회에서 가장 혜택받지 못한 사람에게 이익을 줄 때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생물학적 차이를 수용하며 더 평등한 사회를 추구한 것이다. 저자도 롤스의 입장을 지지한다. 공부에도 유전적 차이가 발생하지만, 그런 차이로 인해 나타난 '능력주의'가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란 운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자신의 성공에 대해 겸허해야 하고, 그런 능력을 공동체 발전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유전자 로또의 힘을 똑바로 받아들이자. 뛰어난 어휘력과 빠른 정보처리 속도, 학교생활을 늘 잘해왔다는 사실처럼 여러분 스스로가 자랑스러워하는 많은 것이 행운의 사건이 잇따르면서 나온, 마땅히 칭찬받을 자격이 없는 결과란 깨달음을 마주할 것이다."(339쪽)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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