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전에 넷플릭스 보고 오세요” 미국 예비새내기의 여름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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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에서 입학 전 여름방학은 마냥 놀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합격의 기쁨과 예비 새내기의 설렘 속에 있을 학생들에게 학교는 일종의 워밍업 과제를 내준다. ‘공통독서(Common Reading)’라고 불리는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이다. 요구는 간단하다. 대학에서 선정한 책을 한 권 읽고 오면 된다. 이후에는 ‘저자와의 대화’ 같은 학습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공통 주제에 대한 신입생들의 독서경험을 대학에서 지적 활동의 출발선으로 삼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프로그램의 의도다.

공통독서는 2006년에 이미 미국 교육부 국립자원센터에서 사례분석집을 내놓았을 정도로 전통적인 프로그램이다. ‘원 북, 원 캠퍼스(One Book, One Campus)’, ‘더 빅 리드(The Big Read)’, ‘캠퍼스 소설(Campus Noble)’, ‘아이리드(iRead)’ 등 학교마다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대학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프로그램의 목표는 ‘대화와 토론을 통한 대학 커뮤니티 활성화’, ‘지적 교류를 통한 대학 공동체 육성’이다.

지적 공동체로서 대학 커뮤니티 활성화

워싱턴주립대의 설명은 이렇다. “공통독서는 선정된 책의 주제에 대해 대학 내 구성원이 교실 안팎에서 대화를 나누고, 학제를 넘어선 다양한 관점과 아이디어가 교류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프로그램 테두리 안에 신입생뿐 아니라 재학생과 교수, 행정과 실무를 담당하는 대학 교직원 등 구성원 전체를 넣어 함께 읽도록 하는 형태가 가장 이상적이다. 많은 대학이 책을 정하는 단계에서부터 학생을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선정위원회에 포함시킨다.

보편화된 교육 프로그램인만큼, 매해 선정도서 목록은 각 대학 혹은 대학사회 전체의 사회적 관심사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고등교육전문 미디어 <인사이드 하이어 에드>는 2019년도 공통독서 리스트를 분석하며 “다양성 이슈와 표현의 자유, 이민자 문제에 책이 집중됐다. 캠퍼스 내에서 지속되고 있는 인종적 긴장감과 소수자 의제가 반영된 결과”라고 평했다. 미국 대학의 신입생 사고 훈련은 일반 교양보다는 사회적 현안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오늘도 미국사회의 난맥상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다양성’이다. 인디애나대 노스웨스트는 △다양성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대화를 지속하도록 할 것 △사회적 정의와 관련된 토의 기회를 제공할 것 △불평등에 대한 이해 수준을 높일 것 등을 프로그램 목표로 삼고 책을 선정한다. 아울러 교육에서 다양성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생물학, 물리학, 경영학, 예술학, 심리학, 인문학 등 각 분과별로 설명하며 프로그램의 취지를 풀이하고 있다.

다양성, 다양성, 다양성... 신입생 사고훈련 키워드

인종 다양성과 소수자 문제에 집중하는 흐름은 전체 목록에서도 확연하다. 미국의 고등교육전문지 <더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이하 크로니클)>은 지난달 21일 그간의 공통독서 리스트를 종합한 분석기사를 내놨다. 700개 이상 대학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지난 4년의 여름방학에 선정한 공통독서 컨텐츠 1천64종이 대상이다. 대부분은 책이지만 온라인강연, 다큐멘터리, 영화, 팟캐스트, 뮤지컬 사운드트랙,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등을 과제로 내준 곳도 많다.

<크로니클>에 따르면 전체 공통독서 선정 작품의 43%가 아프리칸아메리칸(흑인)을, 41%가 인종·인종 간 관계를 주제로 삼았다. 주제는 중복돼 계산된다는 점을 감안해도 최소 10종 중 4종은 인종 문제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더 면밀히 살피면 2017년에는 흑인 문제를 다룬 작품이 4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나 2020년으로 오면서 27%대로 떨어지고, 인종 일반과 인종 간 관계를 다룬 작품 비중이 이에 교차해 약 43%까지 급증한다.

이 같은 변화는 흑인을 중심에 두고 인종 문제를 바라보던 대학사회의 시각이 히스패닉·아시안 혹은 각 인종 간 관계성 등 세부주제로 확대된 현실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종교, 역사, 이민, 판타지·SF, 전쟁,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공통독서 선정 작품의 비율은 감소 추세를 보였다. 70% 이상의 작품이 2010년대에 발행·제작된 것으로 고전보다는 최신 베스트셀러가 다수였다. 사회적 쟁점과 트렌드에 민감한 공통독서 프로그램의 특징에 부합하는 결과다.

사회정의와 소수자의 삶 다룬 권장도서들

가장 인기가 많았던 책은 『Just Mercy』(한국어 번역본 제목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 2014)다. 대학의 공통독서 프로그램에 73번 선정됐다. 뉴욕대 로스쿨 교수인 브라이언 스티븐슨이 변호인 시절 재판 현장에서 목도한 ‘억울한 약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미국의 불공정한 사법 정의를 고발한 에세이다. 출간 당시 1년 가까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고 <워싱턴포스트> 등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어서 공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립된 환경에서 자란 저자가 케임브리지대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배움의 여정을 그린 회고록 『Educated(배움의 발견, 2018)』, 흑인 차별과 폭력의 원인으로 미국의 역사를 직접 겨눈 『Between the World and Me(세상과 나 사이, 2015)』, 인류를 구한 불멸의 세포 ‘헬라 세포’의 주인 헨리에타의 비참한 삶을 10년간 추적한 르포 『The Immortal Life of Henrietta Lacks(헨리에타 렉스의 불멸의 삶, 2010)』, 남아공 태생 스탠코미디언 트레버 노아의 자전 에세이 『Born a Crime(태어난 게 범죄, 2016)』 등이 최다 선정된 책으로 파악됐다.

보다시피 자전적인 서사가 강세다. <크로니클>에 따르면 공통독서에 선정된 전체 작품의 20%가 전기나 회고록이다. 여기에 더해 위에 열거된 작품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고통받아온 ‘타인’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논픽션 작품이라는 공통점도 갖는다. 단순히 개인의 아픔이나 영달을 노래한 자서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책들이 이름을 올렸다. 대부분 가독성과 완성도가 검증된 베스트셀러들이기도 하다.

테드부터 뮤지컬,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까지

공통독서를 통해 미국의 예비대학생들이 만나는 작품은 책에 한정되지 않는다. 하버드대는 2018년 여름 신입생들에게 테드 강연 한 편을 보고 오도록 했다. 나이지리아의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2009년 강연 ‘단편적인 이야기의 위험성’이다. 18분짜리 강연에서 그는 문학작품이 때로 편견을 재생산하며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세계의 모습을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는 그만의 비평론을 펼쳐 보인다. 역시 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다.

뮤지컬이나 영화, TV시리즈가 선정되기도 했다. 세인트루이스대는 2018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스위니 토드」, 「인투 더 우즈」 등 세 편의 뮤지컬을 공통’감상’ 작품으로 선정했고 캘리포니아대 버클리는 2017년 「해밀턴」의 캐스트 앨범을 듣고 오게끔 했다. 뉴욕주립대 빙엄턴은 지난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수정헌법 13조」를 프로그램에 선정했다. 노예해방 이후, 교정시설과 사법권력을 앞세워 교묘하게 ‘합법적 노예제’를 대체해 온 제도적 인종차별의 역사를 다룬 작품이다.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도 지난해 넷플릭스 시리즈를 권했다. 애니메이션 「보잭 홀스맨」이다. 정치적 올바름부터 헐리우드의 쇼비즈니스까지 현대 미국사회에 대한 비판을 근사한 블랙코미디로 풀어냈다는 평을 듣는 작품이다. 이 외에도 20세기 고전 TV시리즈 「환상특급」,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등 공통독서 프로그램의 선정 작품은 다채롭다. 매해 여름 학생들은 호메로스부터 넷플릭스까지, 읽고 보고 느낀 뒤 질문을 들고 캠퍼스로 간다. 미국 대학이 학생을 맞는 방식이다.

출처 : 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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