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롱 타임 노 씨’… 美 스탠퍼드대가 단어 금지한 이유

미국 스탠퍼드대가 ‘유해한(harmful)’ 단어라고 이 학교 웹사이트와 IT(정보통신 분야) 언어에서 금지한 영어 단어ㆍ표현 목록이 미국의 보수적인 단체와 소셜미디어에서 논란 거리가 되고 있다며, 지난 19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사설이 비판했다.

이 대학은 지난 5월 교내 ITㆍ컴퓨터 전문가들이 주도해 만든, 장애ㆍ성(性)ㆍ문화ㆍ연령 등에서 차별적 단어들을 대체할 단어ㆍ표현들을 제시한 ‘유해 언어 제거 이니셔티브(Elimination of Harmful Language Initiative)’를 승인하고 이를 공개했다. 대학 측은 웹사이트에서도 이런 차별적 표현들은 계속 제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학 측은 19일 소셜미디어에서 이 목록이 회자되자, 비공개로 돌렸다. WSJ는 이를 저장해 자사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스탠퍼드대의 허용 단어 지침(The Stanford Guide to Acceptable Words)’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일부 소개했다.

스탠퍼드 대학 당국의 ‘제거 단어 목록’에는 장애를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한 개인을 그가 지닌 장애로 규정하는 표현, 남성 위주의 표현을 남녀 공히 쓸 수 있게 제안한 단어들도 있다. ‘장애를 가진’을 뜻하는 handicapped를 좀 길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person with a disability)’로 풀어 쓰자는 것이나, 남ㆍ여 의장(chairman/chairwoman)을 chairperson/chair로 바꾸는 것들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일부 단어들에 대해, WSJ는 이의를 제기했다. 스탠퍼드대는 ‘미국인’을 흔히 지칭하는 American이란 단어도 ‘미국 시민(U.S. citizen)’으로 바꾸도록 했다. “아메리칸은 남북 아메리카에는 42개국이 있는데 미국이 가장 중요한 국가라는 것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어떤 의약품을 쓰는지 환자 그룹이나 의사들에게도 알리지 않는 의학 실험인 blind study, 전문가를 뜻하는 master, guru도 금지어에 올랐다. 특정 상황에 대해 ‘미쳤다’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일 때 흔히 쓰는 crazy, insane도 정신 건강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상황을 하찮게 만든다고 배제됐다.

개인을 한 특성으로만 표현하는 단어를 금지하다 보니, 마약이나 유해 물질 중독자를 뜻하는 addict도 ‘~에 빠진(devoted/hooked) 사람’으로 풀어 써야 한다. 음치(音癡)라는 뜻외에, 어떤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을 뜻하는 형용사 tone-deaf, 회의를 짧게 하려고 일부러 서서 하는 stand-up meeting도 장애인을 고려해 금지됐다.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뜻인 kill two birds with one stone이나, 이미 결정된 사안을 자꾸 되풀이해서 말할 때 쓰는 beat/flog a dead horse(죽은 말을 매질하다)는 동물 학대 뉘앙스가 있어서 금지됐고, 성(性) 정체성을 강조하는 ladies and gentlemen은 everyone으로 대체됐다.

또 ‘계획을 유산(流産)시키다’고 할 때 흔히 쓰는 abort는 낙태에 대한 종교ㆍ도덕적 우려를 제기하므로, 여름이 다 지나서 찾아온 더위를 일컫는 Indian summer는 과거 ‘게으른’ 북미 원주민(Indians)에 대한 백인의 편견을 담고 있어서, 거부자 명단을 뜻하는 blacklist도 ‘흑인’ ‘블랙’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담고 있어 금지됐다. 허용자 명단인 whitelist도 같은 논리로 배제됐다.

스탠퍼드대의 금지어 목록에는 long time no see도 올랐다. 이미 미국 사회에서 비공식적인 인사말로 굳어졌지만, 그 유래가 영어를 못하는 ‘중국인ㆍ원주민’에 대한 비하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대박 성공’을 뜻하는 gangbusters도 금지어다. 경찰이 범죄조직을 분쇄할 때 쓰는 단어에서 시작했지만, gang에 어떤 인종적 편견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정 분야의 탁월한 전문가를 뜻하는 guru란 단어도 금지어다. 일상에서 남용(濫用)되면서, 불교와 힌두교에서 ‘존경의 상징’을 뜻하던 이 단어의 원래 가치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WSJ 사설은 “스탠퍼드 대학이 이해 당사자 집단들과 검토해 이런 목록을 만드는 데 18개월 걸렸다”며 “치솟는 학비 부담과 학생들의 빚을 부추기는 스탠퍼드대 행정당국과 수많은 교직원들이 다음 번에는 뭘 내놓을지 상상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사설은 또 “대학 측은 소셜미디어에 이 목록이 공개되자 수습하기 벅찼는지 비공개로 전환했다”며 “암호가 없으면, 대중은 stupid는 이 금지어 목록에 왜 올랐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출처 : 애틀랜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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